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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

tokyo_goka #3 (2017.4.1)

#창밖의 컴컴한 어둠이 외롭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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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는 찬비가 계속 내렸다. 빗소리가 운치있어 좋았지만 결국은 쓸쓸했다.

동이 트고도 약하게나마 비가 이어진다. 아주 큰 구름이 하늘을 막고 볕을 내주지 않아 마음이 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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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노리美乃里쨩은 1년새 점장님이 되어있었다. 내내 시간이 맞지 않음에도 짧게나마 나를 만나러와 챙겨주는 게 고마워서

가는 길엔 내가 일하는 곳으로 인사하러 갔다. たか의 차를 타고 카스카베春日部 이온몰로 향했다.

차 안에서 맑지 않은 하늘을 보며 "일본의 커다란 하늘이 좋아"라고 말했더니 たか는 시골이라 그런거 아냐?라며 우쭐해한다.



미노리美乃里쨩을 만나며 간단하게 작별인사를 했다. 멀리 헤어지는게 아닌 느낌이라 그다지 아쉽지 않았다.

오늘은 만우절이라 미노리에게 재미없는 장난을 쳤다가 반응이 시원찮아서 실망했다.

정말 믿은 눈치였던 그녀에게 괜시리 미안한 마음에 다시 사과했다. '오늘의 하지 않아도 되었을 말' 목록에 하나 추가.


바빠진 틈을 타 우린 아래층 스타벅스로 내려갔다. 한국에서 볼 수 없는 몇가지들에 신기해하니 타카는 자세히 묻는다.

아마 사실 타카아키는 각 나라의 스타벅스가 무엇이 다른지 관심이 없으리. 상냥한 그는 나에대한 반응으로 물어본 것임이 느껴졌다.



다시 돌아가는 길. 먹구름은 어디론가 움직이고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 항상 일시적인 헤어짐을 고할때 "안녕히 계세요"가 아닌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한다.

10년전 처음 이곳에 와서 가족들을 알게되고 헤어질 때 그렇게 말하라 알려줬었다. 그 따뜻한 말투가 좋았다. 어쩌면 그 때 이 사람들도 먼 미래를 생각하고 있었을까.

일본어를 한 마디도 못했었을 때의 내가 서로 소개를 하고, 가족이라 부르게 되고, 여행을 오고 다시 찾고. 모두들 나를 가족으로 생각해주게 되기까지의 10년이 있었다.

이제 나도 늙었다고 장난스러운 불평을 하지만 그 새 모두들에게 10년의 시간이 스쳐갔다.

시간은 무심하다. 때로는 지난 추억을 이불삼아 따뜻하게 보듬게 해주지만, 사실 시간은 무심하고 냉정하다. 늙어가는 노인을 보며 하나 둘 몸이 성치 않아지는걸 보는 이의 마음은 미어진다. 시간 앞에서 너무나 작은 존재임을 자각할때 그 무심한 시간이 원망되기도 한다. 10년의 시간을 예쁘게 수놓인 포근한 이불로 만들어줬지만 아직 아쉬운것 투성이다.



미네코 할머니는 요즘들어 건망증이 심해지신다. 어느덧 80이 훌쩍 넘으셔서 지금의 건강으로는 정정하다고 들을만한 나이이긴 하다.

"할머니들의 인식이 갈수록 약해지시니 칫솔을 서랍 안에 보관해줘"라는 엄마의 부탁이 사무치게 슬펐다.

내가 꽤 오랜만에 고카五霞町를 찾았을때 나를 빤히 보시다 겨우 기억나셨는지 환히 반겨주실때의 내 감정은 안도감보다 슬픔이었다.

여러가지 챙겨줘서 고맙다며 손주뻘의 아이에게 용돈을 주는 할머니를 보니 미안未安했다. 할머니들의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쉬운 것이리.

그래도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공항成田空港은 생각보다 붐볐다. 하네다공항에 맛있는 식당이 있다고 소개하던 엄마를 위해 다음엔 하네다로 이용해야겠다 생각했다.

외출이 거의 없는 엄마는 그 핑계로 공항 나들이를 하고싶어 했던 눈치였다.



공항은 떠나는 자들의 집합소여서인지 어쩐지 쓸쓸하다.




밤 비행기.
1년만에 일본에 돌아와 보고 듣고 만나서 느껴진 것, 아직은 익숙함이 남아있어 다행이다.
친구들은 항상 그대로고 일본 가족들은 언제나 날 반겨준다. 한켠으로는 막중한 관계를 지어나가는 임무 따위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곳이 내 안식처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역까지 배웅해주는 타카아키가 참 따뜻했다. 갑자기 낮아진 날씨에 선뜻 제 코트를 벗어주는 그는 상냥한 친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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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내게 중요한 장소이다. 나란 인간의 틈을 메꿔주는 좋은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창밖의 컴컴한 어둠이 외롭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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